
여성들의 워너비 브랜드로 알려진 셀린느는 1946년 아동용 신발 매장으로 시작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셀린 비피아나 (Céline Vipiana)’와 남편 로버트 리차드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을 위한 신발을 찾던 중 직접 제작을 하게 되었고, 셀린의 이름을 따서 아동 신발 매장을 오픈하게 됩니다. 손수 제작한 수제화들은 다른 브랜드 신발보다 훨씬 가볍고 튼튼했으며, 단순한 디자인으로 수선도 용이했습니다. 높은 품질의 예쁘고 편안한 신발은 금세 아이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고 셀린느의 인기는 점점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이 인기에 힘입어 1959년에는 신발 앞 코에 독특한 형태의 말 재갈 장식을 붙인 여성용 ‘잉카 로퍼(Inca Loafer)’를 제작하며 여성용 슈즈 브랜드로 영역을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잉카 로퍼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던 셀린느는 1966년 가죽을 활용한 다양한 아이템을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셀린느 클래식의 시작이 된 ‘포니백’을 포함하여 핸드백,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가죽 제품 컬렉션을 생산해내며 사업을 확장시켜 나갔습니다.
좋은 품질과 높은 품격을 의류에도 적용시키고자 했던 셀린 비피아나는 1967년 셀린느의 첫 번째 터닝포인트가 되는 레디투웨어 컬렉션을 선보입니다. ‘활동적인 여성들을 위해 고급스러운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매일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든다’는 철학으로 부유층이 아닌 새로운 중산층을 타깃으로 잡고 꾸민 듯 안 꾸민 듯한 느낌을 표현해내며 의류 업계에 성공적인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특히 1971년 파리 에뜨와르 광장 개선문 문양에서 영감을 얻어 셀린의 이니셜 C와 결합한 C-blason 로고를 탄생시켰고, 블라종 로고로 프린트한 에트왈 블라우스는 출시와 동시에 특유의 감성으로 여성들에게 사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블라종 로고를 모노그램 패턴화 하여 가방과 악세서리에 접목시켰고, ‘블라종 라인’으로 출시하면서 1980년대 로고 플레이의 시초가 되며 셀린느를 대중적으로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됐습니다.
블라종 로고의 활약 속에 해외로 사업을 확장하던 셀린느는 자연스럽게 명품 대기업인 LVMH의 눈에 들어 1996년 인수되었습니다.
브랜드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기성복 라인을 공격적으로 전개하기로 한 LVMH는 1997년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뉴욕 디자이너 ‘마이클 코어스’를 영입하여 파리지엥 특유의 세련됨과 미국의 실용성을 결합시키며 셀린느의 새 감성을 불어넣게 됩니다. 마이클 코어스는 셀린느에서의 첫 데뷔 무대로 ‘젯셋’ 스타일을 선보였습니다. 젯셋은 개인 전용 제트기로 세계 곳곳의 휴양지를 여행하며 여유를 즐기는 상류층의 라이프 스타일을 지칭하는 말로, 고급스러운 비치웨어, 파티 드레스, 라운지웨어 등으로 컬렉션을 채웠고 선보이며 스포티하면서도 글래머러스한 브랜드로 성공적인 탈바꿈을 하게 됩니다. 특히 젯셋족을 표현하기 위해 태닝한 듯한 다갈색 피부의 모델들을 무대에 올렸는데, 당대 최고의 슈퍼모델이던 지젤 번천을 뮤즈로 내세워 새로운 셀린느를 패션계에 각인시켰습니다.
하지만 2004년 자신의 브랜드에 집중하고자 했던 마이클 코어스가 뉴욕으로 떠나게 되면서, 로베르토 메니체티, 이바나 오마직 등의 수석 디자이너가 그 빈자리를 채웠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하며 답보 상태에 빠지게 되고 셀린느는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매우 고심하기 시작했습니다.
피비 파일로와 셀린느의 만남
2008년, 셀린느는 브랜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공석이었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피비 파일로’를 낙점한 것이죠. 피비 파일로는 27세의 젊은 나이로 끌로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면서 하락세로 떨어지고 있던 브랜드를 단숨에 2배 이상 성장시키고, 전 세계 여성 팬들을 열광시키면서 5년 동안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육아문제로 돌연 패션업계를 떠나게 되었는데, 그녀의 공백기 동안 어느 브랜드에서도 피비 파일로와 같은 디자인을 보여주지 못했고 심지어 끌로에조차 그녀가 떠난 자리를 온전히 채우지 못했습니다. 더 이상의 시행착오를 원치 않았던 셀린느 CEO 베르나르 아르노에게는 피비 파일로가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이었기에 몇 차례 직접 찾아가며 러브콜을 보냈고, 피비 파일로 또한 자신이 무언가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판단 하에 셀린느의 수장으로 합류하게 됩니다. 그리고 2010년 셀린느의 데뷔 컬렉션으로 피비 파일로는 성공적인 복귀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첫 컬렉션을 선보임과 동시에 셀린느는 ‘현대 여성을 위한 가장 동시대적인 브랜드’로 평가받았는데 통 넓은 바지, 어깨선이 내려온 상의, 긴 소매의 아우터는 전체적으로 여유로운 느낌을 선사했고, 유행을 타지 않을 무채색이나 부드러운 색상으로 주를 이룬 컬렉션 라인업들은 파일로가 규정한 셀린느 룩을 표현하기 충분했습니다. 통 넓은 바지, 어깨선이 내려온 상의, 긴 소매의 아우터는 전체적으로 여유로운 느낌을 선사했고, 유행을 타지 않을 무채색이나 부드러운 색상으로 주를 이룬 컬렉션 라인업들은 파일로가 규정한 셀린느 룩을 표현하기 충분했습니다.
피비 파일로는 넓은 통을 가진 하의, 어깨선이 내려온 상의, 소매가 긴 아우터 등 전체적으로 여유로운 핏으로 디자인하며 다양한 체형을 가진 모든 여성들이 자신의 옷을 입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했습니다. 또한, 무채색이나 부드러운 톤의 색깔들을 채택하여 해가 바뀌어도 유행을 타지 않고 입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디자인하여 실용성과 심미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모든 여성이 옷을 통해 자신을 돋보일 수 있게 하자는 그녀만의 철학이 담긴 디자인이었습니다. 특별한 영감이나 뮤즈를 내세워 사람들이 디자인에 편견을 가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유명 브랜드나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시즌의 컨셉과 소재, 디자인, 영감 등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고 설명하고 싶어하는 것과는 달리 자신의 디자인이나 제품에 대한 부연설명을 덧붙이지 않기도 했습니다.
특히 첫 컬렉션은 아직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많은 인상을 남겼는데, 바로 지금의 셀린느를 떠올리면 떠오르는 카바스백, 러기지백, 클래식박스 등 실용성을 겸비한 가방들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러기지백은 1970년대 셀린느의 빈티지 여행 가방에서 영감을 받아 피비 파일로가 재해석한 것으로 정방형의 기본 형태에 양 옆 날개가 펼쳐진 듯한 실루엣은 로고나 브랜드의 디테일 없이도 한 눈에 셀린느 제품임을 알 수 있는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습니다. 로고를 강조하던 다른 명품 브랜드들과는 달리 특유의 형태가 주목되는 디자인으로 21세기 잇백 시리즈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유명 패션브랜드에서 박시한 형태의 위에서부터 사다리꼴, 날개가 달린 것 같은 비슷한 가방을 선보였고 이런 디자인의 모티브가 된 트라페제백 디자인을 처음으로 선보인 피비 파일로의 패션계 영향력이 어땠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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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가정에 모두 열정적이었던 피비 파일로는 본인 스스로를 엄마이자 친구, 그리고 패션디자이너라고 칭하며 유능한 현대 여성상을 대변하며 전 세계 여성들로부터 엄청난 찬사를 받아왔고, ‘젠틀우먼’, ‘엘리트 시크’ 등의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했습니다. 단아한 외모와 실루엣으로 디자이너를 넘어 여성들의 우상으로 손꼽히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대단한 영향력은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전에 제품이 품절되기도 했으며, 발매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등 그녀가 곧 브랜드가 되며 셀린느에서의 입지는 나날이 커져갔습니다. 하지만 2018년 F/W 컬렉션을 마지막으로 돌연 작별을 고해 세계 패션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뉴 셀린느의 등장
10년동안 지속했던 피비 파일로는 그렇게 셀린느를 떠났고, 입생로랑의 디자이너였던 에디 슬리먼이 합류하게 됩니다. 셀린느는 남성복 디자이너로 유명했던 에디 슬리먼을 디렉터로 임명함과 동시에 셀린느 맨즈 라인과 더불어 오트쿠튀르, 향수 라인의 신규 런칭을 알리며 셀린느의 새 출발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였습니다. 피비 파일로가 10년간 구축해 온 단단한 이미지와 우아한 여성복의 상징성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에디 슬리먼이 셀린느를 어떻게 해석해낼 것인지에 대해 우려와 기대가 집중되었습니다. 셀린느에 입성하자마자 단행한 것은 바로 로고의 교체였습니다. 입생로랑 시절에도 브랜드의 상징이자 정신이라고 볼 수 있는 로고를 교체하며 생로랑의 21세기 부흥을 안겼던 기억을 되살려 평행이론의 행보를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죠.
로고를 교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새로운 무드와 라인을 선보이기 위해 로고 교체라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고, 피비 시절 사용되던 로고에서 É의 액센트를 제외하고 폰트 자간을 좁혀 새로운 밸런스를 구축했습니다. 초기 셀린느의 로고에는 E에 악센트가 없었다는 점과 브랜드 헤리티지에 좀 더 집중하고자 초기 로고를 재현한 로고를 선보인 것입니다. 피비가 셀린느를 떠남과 동시에 10여년을 함께한 로고도 동시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며 올드 셀린느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고, 에디 슬리먼이 이끄는 셀린느는 뉴 셀린느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디자이너의 변경으로 올드, 뉴 라는 단어가 붙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는데 피비가 셀린느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특히, 디자인면에서도 디테일의 차이를 나타내며 올드 셀린느와 뉴 셀린느를 더욱 확고하게 구분 짓게 만들었습니다. 2019년 셀린느 데뷔 컬렉션을 통해 화려한 색상, 타이트한 핏의 실루엣을 채택한 디자인을 처음으로 선보였는데 기존의 미니멀과 편안함을 중시하던 셀린느의 이미지와 상이했을 뿐만 아니라 입생로랑 시절의 이미지가 너무 겹쳐보여 ‘슬린느(Sline)’, ‘생로랑 2.0’ 등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수많은 논란과 비아냥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특히 가방에서 기존 셀린느와의 차이점이 더욱 두드러졌는데 피비 파일로는 로고를 최대한 숨겼던 반면 에디 슬리먼은 로고를 최대한 활용하여 누가 봐도 셀린느인 것을 강조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피비의 클래식 박스가 사각 버클이었다면, 에디표 클래식 박스는 트리오페 버클 장식을 달았습니다. 또한, 브랜드 로고가 은은하게 들어간 피비의 카바백과 달리 로고를 크게 디자인하여 로고 아이덴티티를 강조했습니다.
2019년 첫 컬렉션이 마무리 된 후, 에디가 보여준 셀린느의 파격적인 변화에 대한 거부감과 피비 시절의 셀린느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져 중고 제품 가격이 약 30% 이상 상승하였고, 인스타그램에도 올드 셀린느 계정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에디 슬리먼은 자신의 색을 셀린느에 입히기 위해 다양한 행보를 보여주었고 the 16 백을 선보이면서는 뉴 셀린느의 팬들도 많이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카바스백, 코튼백 등이 셀럽들의 공항 패션으로 화제가 되었고, 좀 더 젊어진 디자인으로 주목을 이끌어 냈습니다.
아직도 누군가는 올드 셀린느 계정을 팔로우하며 피비 파일로를 그리워하고 있지만, 누군가는 에디 슬리먼이 디자인한 뉴 셀린느 백을 갖고 싶어하죠. 셀린느만큼 새로운 디자이너를 만날 때마다 커다란 변화를 겪어온 브랜드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초기 큰 거부감을 보였던 에디 슬리먼의 셀린느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브랜드 상승세와 틱톡, 인스타그램 등을 활용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브랜드 상승세를 이어가는 행보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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